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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공원의 문화재를 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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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미나토구는 도쿄를 대표하는 도시의 하나이면서 한편 역사적인 건축물과 그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토지입니다. 하네다 공항에서 JR 하마마츠초 역에 내려온 당신은 시간이 허락하면 일본에 온 당일 도쿄를 대표하는 심볼 타워, 도쿄 타워로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미나토구에는 「에도시대」(1600년~1868년)를 통치한 도쿠가와가의 지배 아래, 많은 절과 무사의 저택이 있었습니다. 도쿄 타워 바로 앞에 있는 조조지(寺上寺)는 불교 시설인 것과 동시에, 그 도쿠가와가의 조상을 모시는 역할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재도 절 안에는 몇몇 「...

시바 공원에 대해서

미나토구 시바 공원은, 도쿄도 중에서도 하네다 공항에서 도심에 나오는 JR 하마마츠초 역에서 바로 곳에 있습니다.

현재도 역사적인 건물이 남아 있으며, 대도시이면서도 에도시대의 건물도 있습니다. 시민의 휴식 장소인 시바 공원의 부지 내에는 도쿄 타워가 있으며, 그 아래에는 큰 절, 증상사가 있습니다. 관광 자원이 풍부한 시바 공원 주변의 매력을 살펴 봅시다.

시바 공원 주변의 지역 가이드

도쿄 타워 지역

도쿄 타워는 시바 공원 안에 있습니다. 밤에는 라이트 업되어 촬영 스폿이기도합니다. 여름과 겨울, 이벤트 등으로 라이트 업의 색이 바뀌는 것도 볼거리입니다.

시바 공원 지역

에도 시대부터 계속되는 도쿠가와 가문의 보리사, 증상사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도쿠가와가에 관련된 사원과 문이 보입니다. 공원은 휴식의 장소로서 구민에게 사랑받아 오랜 역사와 사람들의 생활이 융합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시바 공원의 관광 명소 4선

1. 도쿄 타워(일본 전파탑)

1958년 12월, 종합 전파탑 및 관광탑으로서 개업. 높이 333m. 중량은 약 4,000톤. 당시 일본의 기술을 결집해 불과 1년 반 정도만에 완성됐다.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 최초의 초고층 건조물에만 지반이 강한 잔디 공원 지역이 건설지로 선정되어 탑 다리의 기초는 지중 깊게 20m까지 도달하고 있어 강풍에 맞춰 철탑은 풍속 약 90m에도 견딜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철골의 유지 및 미관을 유지하기 위해, 개업 내 5년에 한번, 빠뜨리지 않고 행해져 온 탑체 도장 공사는, 기초로부터 도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인력에 의한다. 도장에 사용하는 페인트의 양은 약 34,000ℓ. 타워의 유지에는 옛날에도 지금도 장인의 전통 기술이 필수적이다.

또, 도쿄 타워는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 등 수많은 문화·예술 작품에 등장해, 일본인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작품을 통해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헤세이 원년부터 스타트한 라이트 업은 「도쿄의 야경을 바꿨다」라고 말해, 도쿄 타워의 존재감을 보다 침투시켰다.

2.삼해 탈문(증상사)

조조지의 메인 게이트. 동일본 최대급의 문.

1611년 조영, 1622년 재건됐다.

증상사는 불교의 절이지만 도쿠가와가의 조상을 떠올리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도쿠가와가는 1603년부터 1867년까지 ‘에도시대’ 일본을 통치한 가문이다. 이 시대는 지금까지 일본의 역사상 가장 통치가 안정되어 있어 각지에서 다양한 문화예술이 태어나 발전했다. 1700년대에는 「에도」의 인구는 100만명을 넘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1800년대 파리의 인구가 약 54만명, 런던의 인구가 약 86만명이었다) 이 문 위로부터 는 바다가 바라볼 수 있고 멋진 전망이었다고 한다. 삼해탈의 '삼'은 '무사보리, 분노, 어리석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해탈'은 이 세 가지를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조조지 안에서 이 문이 유일하게 ‘에도시대’ 초반으로 남아 있다. 「에도」의 사람도 빠져버릴 이 문을 통해서 절에의 참배로 향해 주었으면 한다.

3. 구대덕원 영묘문문

1632년 건립. 도쿠가와가의 2대째 도쿠가와 히데타다(159~1632)를 떠오르는 영묘의 문이다. 도쿠가와가는 1603년부터 1867년까지 ‘에도시대’ 일본을 통치한 가문이다. 이 시대는 가장 통치가 안정되어 각지에서 다양한 문화예술이 태어났다. 1700년대에는 「에도」의 인구는 100만명을 넘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1800년대의 런던의 인구가 약 86만명) 「영묘」란 조상의 영을 모시는 건축물로, 중국의 「공묘」나 인도의 「타지 마할」도 등도 그 일종이다. '대덕원'이란 부처의 제자가 되기 위해 히데타다에게 보내진 이름이다. 영묘는 장려하고 규모가 크고, 이 문은 그 영묘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었다. 1945년 전쟁에 의한 폭격으로 4개의 문을 제외한 모두 소실하고, 그 후 3개의 문은 다른 장소로 이축되어 이 문만이 이 땅에 남아 있다. 이 문을 볼 때, 한때 건축기술의 훌륭함과 도쿠가와가의 위용을 상상할 수 있다.

4.유장원 영묘 2천문

1717년 건립. 도쿠가와가 제7대째 도쿠가와 가계

(1709~1716)의 영묘의 문이다.

'영묘'란 조상의 영을 모시는 건조물로, 인도의 '타지 마할'과 중국의 '공묘' 등도 그 일종이다. 도쿠가와가는 '에도시대'(1603~1867년)의 약 300년간 일본을 통치한 가문으로 이 시대는 그동안 일본 역사상 가장 통치가 안정되어 다양한 문화가 열렸다. 에도는 1700년대에 100만명의 인구가 되었고 당시 파리와 런던을 잇는 대도시였다. 「아이쇼인」이란 부처의 제자가 되기 위해 가계에 보내진 이름이다. 불과 8세 미만으로 사망한 가계의 영묘는 도치기현 닛코시에 현존하는 ‘닛코 도쇼구’에 못 미친다고 할 정도로 장려한 것이었다. 그러나 1945년 전쟁 때 폭격으로 대부분 소실됐다. 도쿠가와 8대째 이후에는 이런 영묘는 건조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이 문은 도쿠가와가의 역사의 일부를 아는데 있어서도 매우 귀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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